제목 : 신학생 김은도의 죽음
본문 : 합 1:3 히 11:25 빌 3:10
일본은 식민지 말기에 가히 발악적인 잔인성을 노출하였다. 특히사상
범에 대해서는 더욱 심했는데 당시 조선신학교 3학년인 김은도의 죽음은
그 한 예이다.
그는 인천에서 검거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다. 그 이유는분명치
않았는데, 쌀 공출을 반대했다고도 하고 인간 징용을 비판했다고도 했
다. 김은도는 대구 출신으로 1943년 8월 하기방학 때 이천 방직공장에
근무하는 고향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그 때 사상범으로 지목되었던 공장
친구와 함께 검거되었다. 그는 미결수 감방에서 동사(동사) 겸 아사(아
사)하였다. 저적때기에 덮힌 시체는 너무 말라서 부모조차 알아볼 수 없
었으며, 그의 뒷머리에 있는 흉터를 보고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일제는 사상범에 대해서는식량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전혀 먹을 것을 주
지 않고 추운 감방에서 굶기고 얼려 죽이는 잔인한 방법을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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