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시험

  조회수 : 330    / 등록일 :    / 출처(저자) : KCM 모음



제목 : 민중의 시험
본문 : 벧전 4:12-14 살전3:3,7

초기 기독교선교에는 중대한 어려움이 닥친 적이 많았다. 의료와교육
사업이 윤허되어 그 일을 시작하는 데는 외형적 어려움이 적었으나, 그
일과 함께 간접적이나마 시행된 복음 선교에 대한 경계는심했다. 그보
다도 정부 지도층이나 민간 모두에 걸쳐 서양인에 대한 배타적 적개심이
상존하던 시절, 급기야 음모에 의함이었으나자연발생적 현상처럼 영아소
동이란 대시련이 닥쳤다.
내용인즉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 어린이들을 잡아다가 삶아 먹거나 미
국에 노예로 팔아 넘긴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선교
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는 아이들을 잡아다 가두는 수용소이며 병원은 실
험실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아이들의 눈알을 빼서 사진기 렌즈로 쓴다
는 어처구니없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것은 민중의무지에서 비롯된 유언
비어였고 또한 선교사들에 대한 반감을 가진사람들을 부추기는 결과를
빚었다.
배재와 이화학당에 있던 학생들은 도망쳤고 부모들은 몽둥이를들고 학
교와 병원을 습격했다. 선교사들은 외출을 삼갔으나 선교사집 대문마다
비난의 벽보가 나붙었다. 외무아문과 미국공사관 등과의 교섭이 시작되
고 일시적으로 모든 선교활동이 중단되었다.
마침내 성양 각국 공사들은 조선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경찰력을 동
원하여 선교사와 선교부 재산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정부는
민중의 오해를 푸는 방을 내붙였고 치안을 다스렸다. 인천에 정박중이
던 미.불.러시아 함대 군인들이 서울에 진주 무력시위도 벌였다. 아무
튼 이 소동은 보름만에 진정되었으나 선교 초기의 일대시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