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인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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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국 기업인의 이정표 ? ?
l991년 3월, 미국 시애틀에서 한 한국인의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6l세로 ?타계한 유재라 씨의 유언장에는 주식과 땅, 집 등 약 2백억 원의 재산을 조 ?국에 모두 기부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것인데 그의 아버지가 바로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으로 한국기업의 이정표를 ?세운 유일한이다. ? 유일한은 1985년 평양에서 태어나 개화독립 사상이 강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유능한 사람은 외국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교육방침에 ?따라 유일한은 1904년 아홉 살의 나이로 선교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미시건 대학을 졸업하고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제네렐 일렉트릭 ?사에 입사했으나, 회사측에서 동양시장 개척을 위한 지배인으로 임명하려 ?하자 그는 사직서를 내고 숙주나물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사업으로 4년만 ?에 거금을 번 유일한은 l926년, 귀국하여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가 굳이 제약뢰사를 고집한 이유는 당시 일본의 수탈로 가난파 질병이 극 ?에 달해 있었고 일본인들이 정책적으로 한국인의 교육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일한은 이런 가난과 질병을 제약회사를 통해 극복하고 이익 ?금으로 교육사업을 벌이찡다는 경영 원칙을 세웠다. 미국에서 나라 없는 설 ?움을 겪고 `나라와 민족이 없이는 기업은 물론 개인의 존재도 무가치하다' ?는 뼈아픈 경험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원칙은 철저한 자진 납 ?세, 국가정책에의 적극적인 협조로 구체화되었으며 소유, 경영의 분리와 기
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선구적인 챈동으로 연결되었다. ? 그 후 1939년에는 한국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하여 주목을 받았으
며 던년에는 사재를 털어 고려공과기술하원을 세우므로 그의 일생일대의 ?목표인 교육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그는 유한공고와 유한중학 ?교를 추가로 설립하고 지속적인 육영사업을 펼쳐나갔다. ? l962년, 유일한은 소신대로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후배에게 경영권한을 ?맡기고 전 재산을 공익재단인 유한재단에 기증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l97l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썬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신용'과 `기업경영의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평생을
일관했다. 그 결과 유한양행은 일본의 제약회사를 제치고 정상을 차지하게 ?되었으나 그로 인해 그에게는 조선총독부의 온갖 협박과 회유, 정치자금의 ?지원을 요청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유일한은 어떠한 헙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경영철학을 고수했다. 어떤 이들은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하여 기업을 성장시켜야 하는데 유일한은 이점에서 싶패했다고 말하기도 하 ?지만 지금에 와서 그의 경영 철학은 더욱 빙을 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