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이다"한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나면서 소경된 자가 예수께 고침을 ?받은 후 바리새인들의 핍박에 대항하여 "그 예수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 ?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한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대사도의 `위대한 고백'이었습니다만 이는 이름도 없는 ?길가의 소경 거지의 고백이었습니다. 그것은 웅대한 `그리스도'를 조직적으 ?로 제시한 것입니다만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방금 체험한 것을 감격으로 ?간증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와의 조용하고 친밀한 대화에서 고백된 것이 ?었으나, 이것은 대적들의 위험 앞에서 던져진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하신 교회의 기초가 되는 고백 ?이었으나, 이는 그리스도를 만난 한 구도자의 고백이었습니다.
요컨대 베드로의 고백은 교리적이며 교회적이었으나 이 소경 걸인의 고백 ?은 실천적이며 개인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도 견 ?지되어야 합니다만, 이 소경의 소박한 고백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좀더 구 ?체적으로 그의 고백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걸인의 고백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 ?였고, 아는 것은 안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 ?라"(마 5:37) 하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우리의 고백에는 이 `옳다'와 `아니 ?다'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첫째 요소라 하겠습니다. 자기의 본분을 넘 ?어서서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이나, 당연코 `예'하여야 할 일을 ?우물거리며 흐리게 하는 것은 다같이 참다운 고백이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세상에서 고생을 하는 것은 죄의 값이란 인과적 관념을 ?가졌고, 그렇다면 나면서부터 된 이 소경은 자기의 죄냐 부모의 죄냐는 것 ?을 열심으로 토론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라고 간단히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알려 ?고 하고 아는 척하는 유대인에 비해 알지 못하는 일을 깨끗하게 알지 못한 ?다 한 이 걸인의 대답이 얼마나 더 귀한지 모릅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너는 너의 혀를 가르쳐 나는 알지 못한다 할 줄 알게 하 ?라"는 말이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아이로니(irony)의 사상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 하고, 위기에 살면서 안전지대인양 사는 인 ?간의 모순을 풍자한 말입니다. 자기의 알지 못하는 점을 서슴지 않고 분명 ?하게 알지 못한다 하는 데 인격의 기본 요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에 분명하였던 그는 또한 긍정에도 명백하였습니다.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하였던 것입니다. ?즉 예수를 통해 나면서의 소경이 치료받고 지금 보는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의 인격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으나 자 ?기를 고치신 그의 일에는 분명하였습니다.
`내가 알지 못한다'는데 그의 정직성과 겸손함이 표시된 것처럼 `한 가지 ?아는 것은'한데서 그의 지혜와 용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웜스국회에서 황 ?제와 법왕의 위협 앞에 선 루터는 `내가 한 말이 성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취소할 수 없도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순교자들에 있어 예수에 대한 `예'는 ?그대로 그들의 생명을 뜻했습니다. 지금 이 걸인도 그 `예'의 대가가 회당 ?에서의 출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예'라는 ?고백에는 우리의 체면도 대중의 인기도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걸 때가 많은 ?것입니다.
`아니요'와 `예'는 결국 신앙고백의 표리를 말합니다. 분명한 부정이 있는 ?곳에 분명한 긍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백에는 이 부정과 긍정의 ?한계를 분명히 하여야 되겠습니다. 저는 교회의 행정적 문제에 절대가 없다 ?고 믿고 있습니다. 행정적 문제는 교회의 공의회, 즉 총회나 노희의 다수가 ?원하고 결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 그러므로 가령 W.C.C나 N.C.C 같은 문제만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탈퇴하 ?여야 된다고 주장하는 편이나 절대적으로 탈퇴해서 안 된다는 편은 다같이 ?하나님의 뜻을 어긴다고 봅니다.
동시에 교리나 신조의 문제는 다수의 문제가 아닌 줄 믿고 있습니다. 카알 ?라일(Carlyle)의 말처럼 진리는 다수로 결정지을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천 ?만인이 대항터라도 아닌 것은 `아니요' 하여야 할 문제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장로교회는 수 년전 W.C.C 문제를 두고 지나치게 고집하다가 분 ?열의 고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