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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순례2 내리교회
조회수 : 659 / 등록일 : / 출처(저자) :
국민일보
제목 : <한국의 교회순례:2> 내리교회
⊙아펜젤러 인천항 첫발… 신앙의 씨앗 뿌려/노병일전도사 첫 순교…
이민사 첫장 열어/70년대 침체딛고 신자 5천여명… 늘 푸른 믿음 통해 21C
지향 인천시 중구 내동 19 내리교회(이복희목사). 이곳은 한국개신교의 ?역사가 담긴 곳이다. 내리교회 창립일은 1885년 7월19일. 한국 개신교 ?1백10년사와 내리교회 역사는 함께 숨쉬고 있으며 『한국의 모교회』로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 복음을 처음 전했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부부가 인천항에 첫발을 디딘 것은 1885년 4월 5일 오후2시경. ?당시 아펜젤러 부인은 임신중이었으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을 처음 ?찾은 선교사는 네사람이라고 내리교회 이복희목사는 말한다.
내리교회 설립자인 아펜젤러는 인천항에 도착하자마자 모래밭에 엎드려 기
도를 드렸다. 『부활하시던 날,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이시여,이 ?백성을 속박의 사슬에서 풀어주시고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사 빛과 ?자유를 주옵소서』 당시 서울은 갑신정변으로 매우 어지러운 형편이었다. ?미혼인 언더우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로 향했다. 아펜젤러부부는 ?1주일간 인천에 머물다가 일본으로 떠났다. 3주후 다시 한국에 돌아온 ?이들 부부는 인천에서 본격적인 예배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19일,인천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서울로 떠났다. 이 마지막 ?예배를 드리던 날이 바로 내리교회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인천은 내리와 외리로 나뉘어 있었다. 『안마을』인 내리에 ?세워진 교회는 급속도로 가난한 국민들곁에 다가섰다. 한편 서울에 ?들어간 아펜젤러는 내리교회를 잊지 못하고 전도인 노병일을 인천으로 ?보냈다. 그는 『한국의 스데반』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노병일은 ?인천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았고 소래에서 돌을 맞았으며 서울에서 ?병을 얻어 소천한 한국 최초의 순교자였다.
●6천8백여명 미국이주
한국 개신교 초기,고종황제는 서양선교사들의 포교활동에 제동을 ?걸었다.
인천은 서울에 비하면 비교적 압박이 덜 했다. 서울의 선교사들은 주로 ?병원이나 학교를 세우는 일에 주력했으나 인천에서는 왕성하게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다. 서울의 교회가 선교사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반면에 ?인천의 내리교회는 『자주성』을 유지하며 수원 강화에 교회를 세웠다.
1892년에는 한국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교가 내리교회내에 세워졌
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박사가 이 학교 출신이다. 7년 후에는 ?감신대 전신으로서 최초의 신학교육기관인 『감리교 신학회』가 설립됐다. ?내리교회 3대목사인 김기범이 바로 신학회 출신이다. 1902년 고종은 ?민영환을 이민공사 사장으로 임명하고 이민 자원자를 모집했으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내리교회 2대담임인 존스는 교회안에 이민국을 ?설치하고 미국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무려 6천8백여명이 이민을 가게 됐다. 이것이 한국인의 첫 ?이민이었다.
내리교회 신자들도 이민대열에 다수 합류했다. 이들의 신앙지도를 위해 ?내리교회는 홍승하전도사를 함께 파송했고 홍전도사는 ?하와이연합감리교회를 세웠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땀흘리던 제1세대 ?이민자들은 광복후 이승만 대통령에게 15만 달러를 주면서 당부했다. ?『우리들의 고향 인천에 공과대학을 세워주십시오. 젊은이들이 기술을 ?배워야 잘 살게 됩니다』 이대통령은 이 돈을 내리교회 이인흥장로(94년 ?소천)에게 주면서 학교이름을 지으라고 했다. 그래서 이장로가 ?『인천』과 『하와이』의 머릿글자를 따서 『인하대학』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지금은 종합대학으로 크게 발전했다.
내리교회는 1907년부터는 예배때 남녀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해 놓았던 칸
막이를 제거했다. 당시 일부 교인들중에는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맞대는 ?상스러운 분위기에서 어떻게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느냐』며 반대했다. ?또 교인들이 신생아를 출산하면 푸른 깃발을 올리고 종을 쳐서 출생을 ?축하했다. 그리고 한 가정당 5전씩의 헌금을 모아 장학금으로 비축하는 ?나눔의 정신을 행동으로 옮겼다.
●경인지역 선교의 선봉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의 한분인 신홍식목사가 내리교회의 제9대
목사이며 일찍부터 메시야공연등 음악활동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많은 음
악인을 배출해냈다. 후라이보이라는 이름으로 한때 연예계를 풍미했던 ?곽규석목사도 이교회 성가대 출신이다. 내리교회는 한국의 모교회로서 ?경기지역에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다.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 교회로서 ?민족복음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1894년 만수교회를 개척한 것을 ?필두로 고부교회 상도교회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