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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순례5 대전중앙교회
조회수 : 679 / 등록일 : / 출처(저자) :
국민일보
제목 : <한국의 교회순례:5> 대전중앙교회
⊙『양반동네 한밭골』 복음화 “등대”/역사·전통의 집착 털고 치유 목
회로 앙금도 말끔/한때 교단정치 시련도… 평신도 단련 대교회부흥/슬로건:
“하루 한시간씩 기도”/“찬송통해 은혜 충만”
대전직할시 중구 대사동 248의229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전중앙교회
(최병남목사)는 마태복음 5장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영구주제로 삼고 『예수님을 닮은 신
앙인』을 양성하려는데 주력하고 있다. 1백20여만명의 대전시민을 복음화하
기 위해 세워진 1천2백여 교회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교회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전중앙교회는 한때 교단정치의 중심지로 군림해 왔다. 70년대까
지만 하더라도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교세가 큰 교회였다. 대전지역 복음화
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현재는 5천여명의 재적교인들이 『하루에1
시간 기도』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때는 『역
사』와『전통』을 자랑하던 대전중앙교회는 이제 『기도』와 『봉사』에 전
념 하는 교회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새벽기도에 1천명 몰려
예배때마다 찬송가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을 부르면서 철저한 회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특징중의 하나다. 특별 새벽기도 시간에는 1천
여명 이상의 신자들이 참석할 정도로 기도열기가 뜨겁다. 지방이나 서울에
출장을 갔다가도 새벽기도의 열기가 식으면 교회는 자연히 침체한다는 것이
신자들과 목회자의 공통된 생각이다. 대전중앙교회는 1947년 11월12일 한
기춘목사가 은행동 20에 적산가옥 27평을 매입함으로써 첫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적 특성으로 교회
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교회가 창립되고 2년후부터 본격적인 교회당의 모습을 갖추었다. 2대목사
로 부임해온 양화석목사는 신자들의 훈련에 주력했다. 6·25사변이 터지고
황해도지역의 기독교인들이 대거 등록함에 따라 대전중앙교회는 장족의 발
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대전시 중구 은행동 13 적산대지 2백80평을 불하받
아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교인들은
전도,봉사,구제활동에 나섰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게 됐다.
『대전은 남한의 중심지역이다. 대전중앙교회는 대전의 중심교회로서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신자들의 각성은 곧 교회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러
나 대전중앙교회에도 시련은 있었다. 교회가 교단의 정치중심지로 변하면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70년대에 들면서 교회는 성장했으나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신자들이 무리를 지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일
도 있었다. 3대목사인 이영수목사는 예장합동 교단을 움직이는 중심인물로
자리를 잡았으나 일부 교인들은 『탈정치』와 『순수신앙』을 요구했다.
69년에 부임해온 이목사는 86년까지 대전중앙교회를 맡았다. 이 기간동안
교회는 성장했으나 그만큼 시련도 많았다. 복음에 대한 교인들의 열정은 강
했으나 이를 충족시켜줄만한 프로그램이 미흡했다. 대전중앙교회는 1987년
획기적인 전기를 맞게 됐다. 서울 충현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던 신성종목사
가 부임해오면서 그동안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평신도교
육에 대한 열의가 강한 신목사는 신자들의 양육에 힘쓰면서 화합의 목회,
치유의 목회에 주력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전중앙교회를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거
의 없는 상태에서 신목사가 부임해온 것이다. 상처만 받을 수도 있다는 주
위의 우려를 깨고 신목사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신목사가 사
역했던 5년동안 교인들은 전혀 새롭게 변했다. 교회도 다시 부흥하기 시작
했다. 신목사의 복음적인 설교는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동안의 상처
들이 모두 아물고 교회는 활기를 되찾았다.
●참여순수신앙 첨예대립
1991년 12월22일 부임해온 최병남목사는 교회가 안정감을 되찾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임사역자인 신목사의 공이 컸다고 말한다. 『상당히 어려
운 교회에 부임해온 신목사님이 의사와 같은 역할을 잘 감당해 주었어요.
신자들을 철저하게 양육시켜 놓았기 때문에 저는 목회하기가 무척 쉬웠어
요. 새 신자들이 대거 등록함으로써 교회의 체질도 변했어요』 신성종목사
가 닦아놓은 탄탄한 기반위에서 최병남목사는 『화합의 목회』를 꽃피웠다.
특히 예배때는 찬송이 많아졌다. 『찬송으로 서로 화답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찬송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해줍니다. 찬송을 많이 하면 은혜를 ?쉽게 받습니다. 찬송은 분쟁을 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