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순례8 부산진교회

  조회수 : 549    / 등록일 :    / 출처(저자) : 국민일보



제목 : <한국의 교회순례:8> 부산진교회

⊙1백여년 역사 “영남의 어머니 성전”/지역사회 유대깊은 민족교회 자부
교회사가들이 부산진교회(담임 박성원 목사) 역사를 알지 못하고는 영남지
역 신앙의 광맥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부산진교회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다. 따라서 1백년이 지난 지금의 부산진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병들의 진영이 됐다고 믿고 있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군
과 싸우다 병사들이 순국한 역사의 자리에 교회가 자리잡은 것을 민족 교회
로서의 정신을 이어 나가는데 있어 좋은 터전을 주신 것으로 여기고 이를
계승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부산에는 개항이후 여러 교단의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쳤
으나 부산진교회와 직접 관련이 있는 교단은 호주 장로교회다. 부산진교회
는 호주장로교회 소속 데이비스 선교사의 개인적인 결단과 순교의 터위에
세워졌다.
부산진교회의 처음 교인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881년 기독면려회
를 창설하고 세계여행을 하며 이 운동을 보급한 클라크 박사가 신앙공동체
를 부산에 만들어 바로 이들이 부산진교회의 모체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호주 장로교회가 모체
지금까지도 부산진교회 창설 당시의 기록들을 찾을 수 없어 정확한 창립연
도와 초대 교인들의 면모가 확인되고 있지 않은 점이 석연치않은 일이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부산진교회는 서양 선교사들이 부산에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복음을 접하고 믿음을 갖게 된 한국인들에 의해서 1891년에 세워졌을
것이며 이 신앙공동체가 같은해 입국한 호주장로교회 맨지스를 비롯한 호주
여선교사들에 의해 본격적인 교회로 발전해 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부산진교회가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00년10월 왕길지 목사
가 부임하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도 맨지스를 비롯한 몇몇 선교사들이 부산
진 교회에서 신앙 활동을 지도하고 있었지만 호주장로회에서 파송한 목사가
담임한 것은 왕길지 목사가 처음이었다.
그는 부임직후부터 정열적인 활동을 벌여 교회 모습을 가다듬었으며 1904
년에는 부산 지역 최초의 당회를 조직,심취명이 장로장립을 받았으며 명실
상부한 교회 모습을 갖추게 됐다. 32세의 나이로 부산에 온 왕일지목사는
38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봉사했다. 당회가 조직된 부산진교회는 양적·질
적으로 착실한 성장을 이루기 시작했다. 초창기 교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세례와 치리로 당시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믿음과 함께 성경 지식이
어느정도 수준에 머물러야 했으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알맹이 신자』를
엄선했다.

●항일운동의 본거지
어머니교회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감당했다. 부산 지역의 선교를 확장해 나
가던 시기여서 초읍교회 지교회를 설립했으며,하와이 이민 교회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이와함께 한국 교회의 백만 구령운동등 부흥,전도운동을 통
한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제시대에는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중요
한 터전이 되었으며 수난속에 서도 믿음을 지켜 열매를 맺어 왔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체됐던 경남노회를 재건하기 위
한 작업에 착수했으며 과거의 죄과를 회개 청산하고 정통 신앙에 기초한 교
회 재건에 매진할 것을 결의하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에는 전국에서 밀려오는 피란민 교우들의 어머니 역할을 감당해야만했다.
영적인 보살핌과 아울러 피란살이에 찌든 가난한 사람들의 위로자로서 모든
교우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신앙공동체로서 모습을 구현했다.
1960년대는 부산진교회가 본격적인 발전을 이룩한 시기였다. 교회가 발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선포하는 설교에 있다고 말
한다. 성경 말씀 중심의 복음적 메시지가 교인들의 영적 양식이 되고 있으
며 폭넓은 초청 설교자에 의한 말씀과 신앙강좌 부흥사경회를 통한 복음의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신구교 일치운동 효시
1968년 청년회 주최 신앙강좌는 천주교 신부를 초청,강단 교류를 통한 에
큐메니컬 운동의 효시를 이뤄 지금까지 부산진교회가 갖는 에큐메니컬적인
성격을 구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좌천동을 중심으
로 지역사회와 보다 깊은 유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1978년 2월 지역사회 인
사들과의 대화모임을 갖는등 지역사회를 위해 교회가 할 일을 모색해 나갔
다. 지난 91년 교회 창립 1백주년을 맞은 부산진교회는 영남의 어머니 교
회로서 교회의 미래상을 펼쳐 나가기 위한 비전을 갖고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다.

●“해외에 『복음빚』 갚자”
특히 지역사회를 섬기고 복음화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