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순례12 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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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국의 교회순례:12> 새문안교회

⊙108년 전통… 한국교회사의 “산증인”/1887년 언더우드선교사 설립…
첫 장로교회/백범­도산에 영향… 영욕의 민족사 함께한 어머니성전/빈민위
한 사회사앞장 “대중과 호흡하는 열린 교회”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1가 42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새문안교회는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이다. 한국에 복음을 처음으로 가지고 들어온 언더우드선교
사는 1887년 9월27일 서상륜 등 한국인 신자 14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
것이 한국교회의 출발점이었다.

●최현배·윤이상 등 배출
1백8년의 장구한 역사의 질곡을 넘어오면서 새문안교회는 수많은 인재들을
양성했다. 도산 안창호,백범 김구,이슬 최현배 선생을 비롯해 『봉선화』
의 작곡자인 홍난파,최초의 자유시 『불노리』의 저자인 주요한 선생,재
독일 음악인 윤이상씨 등이 새문안이 배출해낸 인물들 이다. 새문안교회는
어떤 시련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와 같은 모습을 견지
해오고 있다. 또한 조화와 포용력을 지닌 『어머니같은 교회』,역사의 강
을 건너오면서 목마른 백성에게 맑고 시원함을 제공하는 『생수와 같은 교
회』로 자리매김해 왔다. 새문안은 한국개신교계의 종가와도 같은 위엄과
전통을 고수하면서 대중과 함께 호흡해 왔다.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교회
들이 『도시 공동화』현상으로 점점 쇠락해가는데 반해 새문안교회는 지속
적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직장인겨냥 목요예배 활성화
80년대 중반부터 4대문안의 교회들이 대부분 교인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새
문안교회는 배가운동에 성공한 사례를 남겼다. 성장요인은 강신명목사이후
새문안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김동익 목사의 예리한 목회전략에 힘입은 바가
컸다. 『도심에는 전문직업인들과 청년들의 왕래가 많다. 이들은 한국의 문
화풍토를 바꿀 만한 힘을 갖고 있다. 이들을 겨냥한 목회가 필요하다는 결
론을 내렸다』김 목사는 직장인을 위한 정오예배를 활성화했다. 매주 목요
일이면 직장인을 위한 『목요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이 예배에 참석한 신
자들중에서 새문안교회에 등록한 사람도 적지 않다.
김동익 목사의 주일예배 특화전략도 교회성장에 기여했다. 보통 나이가 많
은 신자일수록 주일예배 참석시간이 이르다는 점에 착안,1부예배는 노년층
과 장년층을 중심으로 예배와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3·4부는 20대와 30대를
의식한 프로그램과 연결시켰다. 예배를 마친 신자들은 교회가 마련한 교육
과 친교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소속감을 갖게 됐다.
새문안교회는 신앙생활을 즐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민족과 함께 아픔
을 느끼는 신자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역사의식을 갖고 생활하는
신자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진리의 파수꾼으로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의 핵심인물들이 모두 새문안교회 신자들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새문안교회가 현실문제에 관심을 갖고 접근한 것은 교회창립 정신과도 맥
을 같이 한다. 새문안교회의 설립자인 언더우드나 서상륜은 현실 안주를 거
부한 사람들이었다. 비록 외국인 선교사가 교회를 세웠으나 1907년에는 한
국인 최초의 목사인 서경조가 담임을 할 정도로 민족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새문안교회의 역사는 곧 한국교회의 역사였다. 일제치하에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신자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당시 신자수는 1백명 정도에 불과했다
해방 이후에도 시련은 계속됐다.

●강신명 목사 부임 부흥기맞아
새문안교회가 민족의 등대로서 빛을 찬연하게 밝힌 것은 1955년 강신명 목
사가 부임한 후부터였다. 1980년 원로목사로 추대되기까지 『강신명시대』
는 『새문안 제2의 부흥기』였다. 멕시코에 우상범목사를 파송하고 언더우
드기념관을 건립하는 등 한국의 모교회로서의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대만에 김응삼 목사를 파송한 것도 이 시대의 일이었다.
장로교가 분열의 아픔을 겪는 순간에 새문안교회는 에큐메니컬의 입장을
택했다. 즉 통합과 합동의 분열기에 통합측에 서게 됐다. 이때 이미 새문안
교회는 활발한 국내외 전도와 성가대 청년학생활동을 펼쳤다. 유신정권하에
서도 새문안교회는 교회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다양한
공개강좌와 학술강좌를 개최했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사회사업에 앞장섰
다. 강신명 목사의 폭넓은 목회철학과 대폭적인 교역자 증원,당회원의 세
대교체,청년대학생들의 왕성한 활동이 이어졌다.
김동익 목사의 부임으로 새문안은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창립 1백주
년을 향한 교회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굳혔다. 지난 1백년간의 자료들을 집
대성하고 새문안의 현황들을 정리,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