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순례15 강릉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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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국의 교회순례:15> 강릉중앙교회

⊙강릉최초교회… 93년 복음역사 “우뚝”/도내 첫 유치원개교 어린이 전
도교육 심혈/80여 농어촌교회 “어머니성전”… 지역사회 봉사 앞장/“부흥
하는 교회” 모토 목회자·4천성도 “똘똘”
강원도 강릉시 금학동 92의 1에 자리잡은 기독교대한감리회 강릉 중앙교회
(심상영 목사)는 강릉 최초의 교회로서 23만 강릉시민들의 복음화에 앞장서
고 있다. 1902년 강릉시 명주동 명국성씨댁 초가에서 이동식 목사의 기도인
도로 시작된 강릉중앙교회는 강릉시내 80여 교회의 모교회로 꼽히고 있다.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의 고향으로 유교적 전통이 유난히 강한 이곳에서 묵묵
히 영혼 구원에 앞장서온 강릉중앙교회는 재적신자 4천여명의 교세를 자랑
한다. 강원도에서는 원주에 먼저 교회가 세워지고 이어서 강릉중앙교회가
설립됐다. 강릉중앙교회는 처음부터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특히
어린이들의 전도와 교육을 위해 강원도 최초의 유치원인 『의숭유치원』을
개원한 때가 1915년 5월. 이 유치원은 나중에 『중앙유치원』으로 발전했고
강릉시의 숱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과기처장관을 역임한 최종완씨,학술원
회원인 이상수 박사를 비롯해 이 지역의 정치·경제·학술·문화등 모든 분
야의 지도자들이 모두 중앙유치원 출신들이다.
강릉중앙교회는 3·1운동의 선두에 선 교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19년
4월2일에 있었던 『강릉만세사건』의 중심에 선 교회가 바로 강릉감리교회
였다. 청년회와 보통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감리교회 신자들은 80여명에 불과했으나 애국심과 굳은 신앙으로 무장
돼 있었다.
강릉중앙교회는 1919년 안경록 목사가 제3대 담임으로 부임하면서 장족의
발전을 했다. 1922년에는 출석교인이 1백여명에 이르렀고 웅장한 예배당 건
물을 신축했다. 건축비용은 1천원이었으며 미국 감리교 선교부의 도움을 받
았다. 교인들은 일제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할동을 계속했다. 정마르다
전도사는 성경에다 『일본놈을 믿으면 멸망하고 하나님을 맏으면 산다』는
글을 써놓은 성경을 일제 형사에게 압수당했으나 다행히 이 글이 발견되지
않아 화를 면하기도 했다. 강릉중앙교회는 6·25의 혼란과 60년대의 가난
을 딛고 70년대 부터 안정을 찾았다. 70년대에는 성장하는 교회,선교하는
교회,새로워지는 교회라는 표어를 내걸었고 80년대에는 열매맺는 교회,성
령충만한 교회를 강조했으며 그런 가운데 새벽기도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났
다.
1977년 제17대 담임으로 부임한 이동연 목사는 교회 성장에 가장 크게 기
여했다. 각종 성서연구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새로운 성전을 건축했다. 강릉
의 모교회로서 농어촌교회를 지원하고 강릉지역의 교회들을 하나로 묶는데
앞장섰다. 가족 찬송가 경연대회등을 열어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었고 총동
원전도주일을 정해 축제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강릉중앙교회가 역사와 전통만을 강조하지 않고 『젊은 교회』로 변한 것
은 지난해 2월 심상영 목사가 부임하고부터다. 심 목사는 교회가 지역사회
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교회는 예
전과 다른 활기를 보이고 있다. 젊은 목회자의 비전에 신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새벽기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양로원건축사업도 새로 시
작했다. 소년·소녀가장돕기운동과 미화원들을 위한 위로잔치,학생들을 위
한 장학사업등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95년 교회표어를 『말씀과 기도로 새로워져서 선교와 봉사에 앞장서는 교
회』로 정하고 4천여 신자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신자들은 젊은 목회자와
비전을 공유하면서 제2의 부흥을 꾀하고 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신자
가 금년 들어 평균 3백명을 웃돌고 있는 것이다.
심상영 목사는 『강릉중앙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길이 무
엇인가를 스스로 찾아서 이를 실천에 옮길 것』이라면서 『국내·외 선교에
도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강릉=임한창〉

⊙심상영 담임목사/“『나눔』과 『섬김』은 목회자의 본분”(인터뷰) 강
릉중앙교회 제18대 담임인 심상영 목사(42)는 원주에서 태어나 감신대학을
졸업하고 원주정산교회 포천가산교회 인천간호보건전문대학교목을 거쳐 게
렛신학대학에서 공부했다.
심 목사는 원래 『의사』가 되려 했으나 부친 심민택 장로(70·우산감리교
회)가 『장남은 무조건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다』고 강조함에따라 신학대에
진학했다. 감신 재학시절에도 신학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했으나
어느날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깊이 깨닫고 회개했다 『그때부터 목회자로서
의 소명의식을 분명하게 깨달았어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