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순례17 예천교회

  조회수 : 852    / 등록일 :    / 출처(저자) : 국민일보



제목 : <한국의 교회순례:17> 예천교회

⊙1911년 노하리주민드러이 세운 자생적 교회/새성전건축 “부흥하는 농촌
교회” 사명충실/김윤식 목사 등 걸출한 하나님일꾼 “양성소”
경북 예천군 예천읍 노하리 52번지. 예장통합 예천교회(담임 황주룡목사)
는 7만 예천군민들의 영혼구원을 사명으로 느끼고 있다. 건축비 20억원을
들여 엘리베이터 시설을 갖춘 새성전을 건축하고 11일 헌당예배를 가질 예
천교회는 84년이라는 교회역사가 말해주듯 모든 면에서 선구자적 책임을 감
당한다.

●성도 8백여명 급성장
예천군내의 교회는 총 80여곳. 신자수는 7천여명에 이른다. 복음화율은
10%정도. 주변에 사찰이 많고 주민들의 성품이 강직하고 보수적이라는 ?점이 복음전파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런 악조건속에서도 예천교회는 ?장년신자 6백여명,교회학교 학생 2백여명의 대교회로 성장했다. ?예천교회는 1911년 2월 26일 기역(ㄱ)자형 주택을 임대해 권수도 김분이 ?최악이 김조경 교동댁등 5인이 첫예배를 드림으로써 문을 열었다. ?교동댁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첫예배를 드린 곳이 ?교동댁의 집이었다는 것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권수도를 비롯한 몇명의 신자들은 이곳에서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금당
실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교회출석에 어려움을
느낀 이들은 노하리에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보통 지역의 초대교회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나 예천교회는 애향심에 가득
찬 주민들에 의해 시작됐다. 일제치하에서는 애국운동과 문맹퇴치, 6·25사
변 후에는 구제운동과 함께 성경구락부를 운영했다. 예천교회의 유치원은
민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유치원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65년. 황차성권사가 건축비를 모두 부담했다
황 권사는 지독한 가난때문에 외아들을 잃은 것이 한이 되어 거액을 선뜻
헌금했다. 예천군의 유지중에 이 유치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
다. 또한 일제치하에서도 계속돼온 야학운동으로 교회와 연관을 맺고 있다.
예천교회가 배출해낸 목회자만도 20여명에 이른다. 예장통합의 총회장을 지
낸 김윤식 목사는 1951년부터 20년간 이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한인교회중의 하나인 동양선교교회 임동선 목사의 처가가 모두 예
천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임 목사의 장모인 장갑선 권사는 『기도의 어머니
』로 유명했으며 임목사도 장모의 기도가 있었기에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부산부전교회 신예철목사,미국루터교회 장은식목사,하와이한미교회 김
종엽 목사 등이 모두 예천교회 출신이다.

●“지역사회 섬기는 교회”
1985년 황주룡 목사가 부임해오면서 예천교회는 『제2의 부흥기』를 맞았
다. 황 목사는 교회 행정을 쇄신하고 신자들의 교육에 만전을 기했다. 황목
사는 『농촌교회는 인구감소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교회성장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고 강조했다.
황 목사는 『특별새벽기도운동』과 『총동원전도주일』등 각종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전교인이 전도지를 들고 3시간동안만 예천군
을 순회하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전도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예천교회는 이제부터 지역사회를 위해 본격적으로 일할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농촌교회도 얼마든지 부흥할 수 있고 비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황 목사는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장로와 권사,
집사들이 많은 것도 자랑이라고 말한다. 농촌교회이면서도 10여년전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제2의 도약” 자신감
예천교회가 감당해야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지역주민들이 『예천교회 신
자라면 확실히 믿을만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고 황목사
는 평소 강조한다. 금년 표어를 『선교하는 교회』로 삼은 예천교회는 7만
군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새성전을 건축하고 주민
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 〈예천=임한창〉

□약사
▲1911년=노하리 교동댁에서 5인이 첫예배
▲1913년=목조 9칸의 교회당 건축
▲1936년=목조 60평교회 신축. 서화선목사 부임
▲1943년=신사참배 반대로 신자들 구속됨
▲1950년=6·25사변으로 교회당 피폭
▲1953년=김윤식 목사 안수후 담임으로 취임
▲1957년=황재우 임오석 장로 장립. 3층 교회당 완공
▲1971년=김윤 식목사 교단총무로 취임. 장세윤 목사 부임
▲1976년=교회묘지 구입
▲1985년=황주룡 목사 부임
▲1992년=교회부지와 목사 사택 매입
▲1995년=교회창립 84주년. 새성전 헌당예배

⊙인터뷰/영성강조 “공부하는 목회자” 정평/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