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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순례19 동수교회
조회수 : 1127 / 등록일 : / 출처(저자) :
국민일보
제목 : <한국의 교회순례:19> 동수교회
⊙통일염원 불길 뜨거운 청년기교회/72년 첫예배후 신도 1천5백여명 대교
회도약/기도열정·성숙한 목회 어우러져 “부흥”대역사 6·25사변의 아픔
을 가슴에 안고 통일을 위해 기도의 불씨를 모으는 교회가 있다. 인천광역
시 부평구 부평6동 635의1,기독교대한감리회 동수교회. 실향민인 주봉택목
사와 1천5백여명의 신자들은 매년 6월이 되면 북한선교와 민족의 통일을 기
원하는 특별기도를 드리고 있다.
동수교회는 지난 72년 1월2일 부평감리교회 신자 22명이 개척한 교회다.
조경석장로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 지금은 재적신자 1천5백여명
의 대교회로 성장했다. 담임목사 없이 예배를 드려오던 동수교회는 이듬해
주봉택목사를 담임으로 맞으면서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초창기 동수교회 신자들의 열성은 교회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복음
의 열정을 가진 신자들의 기도와 담임목사의 능숙한 목회가 어우러져 동수
교회는 성장을 거듭했다. 교회터를 구입하고 성전을 건축하면서 단 한번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었다. 신자들은 돈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알고 있었다.
93년 7월 17일 봉헌한 성전도 22억원의 건축비가 소요됐다. 그러나 건축
과정에서 아무런 아려움이 없었다. 부평6동 주민들은 매일 아름다운 종소
리를 듣고 있다. 독일에서 들여온 세개의 커다란 종이 멋진 화음을 창조해
내고 있다. 도심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종소리를 이 지역 주민들은 정오
와 오후6시면 어김없이 듣고 있다.
주봉택 목사는 동수교회에 부임해오면서 환상을 보았다. 신자들이 구름떼
처럼 몰려오는 환상이었다. 기도로 무장된 신자들은 전도에 열성이었고 주
목사는 양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함남 영흥에서 태
어난 주목사는 6·25사변때 인민군에 강제 징집됐다. 당시 나이가 열일곱이
었다. 그는 18명의 인민군과 함께 국군에게 포위되어 집중포화를 받았다.이
과정에서 열다섯은 사망하고 둘은 실종됐다. 주목사만이 유일한생존자였다.
주봉택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는 반공포로로 풀려나와 사고
무친한 논산의 상월감리교회에 출석하면서 처음으로 복음을 접했다. 외로운
청년에게 복음은 꿀송이보다도 더 달았다. 주봉택은 신자들의 사랑에 감동
했다. 그리고 신학을 결심했다. 대전감신대(목원대 전신)를 졸업한 그는 서
산읍교회,성연교회를 거쳐 동수교회에 부임했다. 이미 사선을 수차례 넘은
바 있는 그는 복음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
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동수교회가 통일을 위한 기도에 열성인 것도 주목사의 이런 경험과 관계가
깊다. 주목사는 강해설교보다는 주제설교를 택해서 신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데 주력했다. 신자들은 근검과 절약을 실천하기 위해 『나눔잔치
』를 베풀고 있다. 가정에서 불필요한 물건들을 교회로 가지고 와서 필요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다. 노인들을 위해 관광잔치를 베풀고
지역사회의 어려운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재정적인 지원을 한다. 동수교회
는 감리교의 특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회다. 주일예배때 신자들은
주목사가 주보에 기록한 『공동기도문』에 따라 모두 통성으로 기도를 한
다. 예배순서가 세분화되어 있어서 매우 엄숙한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다.
『인천복음화』라는 사명감에 불타는 동수교회 1천5백여 신자들과 주봉택
목사는 금년을 『총력전도의 해』로 정해놓고 전도에 열중하고 있다. 또 통
일을 위한 기도운동을 전국교회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당찬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인천=임한창〉
⊙인터뷰/북한복음화 남다른 열정… 매년 특별기도회/주봉택 담임목사 동
수교회 주봉택 목사(62)는 실향민으로서 통일염원이 누구보다 강한 목회자
다. 북한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는다. 신자들도 주목사
의 뜻에 따라 북한선교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왕정순 사모(61)와의
사이에 4남매를 둔 주목사는 장남이 자신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된 것을 감사
하게 생각한다.
『6·25사변때 인민군으로 끌려갔어요. 그런데 이것이 제겐 축복이었어요.
북한에 있었더라면 여전히 불신자였을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지요
』 주목사는 친척이나 가족이 단 한사람도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았다. 하나
님의 부르심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인생은 매우 비참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외로움을 기도와 신앙으로 승화시켜 지금은 감리교의 『한 민족통일선교
회』회장으로 봉사할 정도로 지도력을 인정받는 목회자가 됐다.
『목회자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