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꾼의 십일조

  조회수 : 445    / 등록일 :    / 출처(저자) : 문장대백과


김씨는 함북 성진시 욱정 장로 교회와 그 교회가 설립한 보신 소학교(교회 마당에 있었음) 두 곳의 소제를 하는 심부름꾼이었다. 그는 30이 지나도 장가를 못들고 말을 더듬고 있었으므로 누구나 업싯어기고 깔보았다. 그러나 그는 양같이 순하고 겸손하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사람이었다. 돈 많은 김 의사가 550원을, 부자 강 장노가 500원...5,6백명 교인들이 많은 연보를 하는 것을 볼 때 자기는 돈이 없어 많이 못하는 것이 퍽 유감이었다.
그날 밤 예배를 드리고 교인들이 다 간 다음 교회당 안을 다 소제하여 놓고 그는 강대상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였다. "하나님이여, 내게 돈을 주사 천원 연보를 하게 해 주시옵소서." 자기는 김 의사나 강 장노 같이 돈이 있으면 천원 연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부흥 목사가 십일조를 드리면 창고에 넘치게 주신다는 말을 기억하고 그날 밤에 십일조 연보하기를 작정하고 15원 월급에서 달마다 십일조를 정성으로 바쳤다. 몇 해 후의 일이다. 자기가 푼푼이 모아둔 돈이 2백원이 되었는데 이것을 안 R장로는 그 돈을 불겨 주겠다하며 차용하여 갔다. 4,5년이 지나도 그는 이자도 주지않고 원금도 주지를 않았다.
김씨는 피땀으로 쌓인 돈이 거저 없어지게 되니 너무도 원통하여 R장로를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며 본전이라도 갚아 달라고 하였다. R장로 역시 궁하게 될 대라 별 방도는 없고 고개넘어 쌍포해변에 모래밭을 측량하여 둔 것이 있는지라 2천여평에 몇 십원 가격도 안되나 김씨는 눈물을 머금고 그 경작하지도 못하는 모래밭을 받았다. 아무리 십일조를 한다해도 평생에 심부름을 하지 않으면 머슴살이 밖에 할수 없는 김씨가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이상하게도 쌍포에 중공업 시설이 앉게 되어 고주파 공장을 세우게 되니 땅값은날개를 돋치기 시작하여 김씨의 모래밭은 밤을 자고나면 껑충껑충 뛰어올라 한평에 45원을 부르게 되니 김씨는 일약 부자가 되었다.
어느 여름 주일 낮 연보에 연보집사는 나에게 이상한 감사연보 봉투를 가져왔다. 봉투가 아니라 창호지 종이에 싸서 밥풀로 붙이고는 겉봉에 소학교 2학년 정도의 필적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돈'이라 썼다. 뜯어보니 100원짜리 새 돈이 열 장이나 들어있다. 목사 월급이 5,60원 할 때다. 지금으로 말하면 100만원 이상의 연보다. 이름도 쓰지않고 나는 곧 김씨를 찾아가 물었더니 그는 감격한 어조로 하나님 앞에 기도한 첫날 밤의 약속대로 천원을 바친 것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