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정신과 야쿠자의 차이

  조회수 : 945    / 등록일 : 2006-10-19   / 출처(저자) : 기독교신문/바이블파워


사무라이 정신과 야쿠자의 차이

마피아의 사업원칙은 상대로 하여금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마귀의 세력들이 쳐 놓은 덫에 걸려 노예가 되는 것은 공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남자(가장)는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다고 규정해 놓으셨는데(창 3:19),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살려고 할 때 늘 문제가 있게 되어 있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게 될 때 가계이든 기업이든 국가이든 그 경영이 어렵게 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것만 알아도 인생 공부 절반을 한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순간의 판단부족으로 공짜를 잡으려다가 불행의 수렁으로 떨어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건강을 잃고 가정을 파탄시키며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고초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공짜를 좋아하는 것은 욕심을 내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게 된다(약 1:15). 야쿠자는 상대기업을 빼앗으려 할 때, 그 기업에 돈을 빌려주어 그들로 빚을 쓰게 만든다. 그리고 상대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음을 알 때 상대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다. 빚쟁이는 야쿠자의 말을 듣기 위해 세 가지 수법을 동원해야 한다. 첫째, 거짓말, 둘째, 도둑질, 셋째, 살인이 그것이다. 빚쟁이는 결국 야쿠자의 요구대로 행함으로써 범죄에 가담하고 그들의 하수인이 된다. 야쿠자가 남의 소유의 부동산을 빼앗으려고 하면 먼저 시비를 걸어 그 부동산이 자기들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협상을 한다. 그리고 거기서 오가는 말에서 단 한 가지라도 끈을 맬 꼬투리를 찾으며, 2차, 3차 협상을 해가면서 그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생트집을 잡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 친구들이 독도에 대해 벌인 정략이며, 이것이 곧 야쿠자 수법이다.

일본은 4월 12일 독도 인근 우리측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수로 측량을 하겠다고 시비를 걸어왔다. 우리 외교통상부는 그들이 우리 해역을 침범하면 강력 대응하겠으며, 심지어 나포까지 고려한다고 발표했다. 그 문제는 여기서 끝내야 했다. 일본 외무차관이 우리나라에 와서 말할 무슨 건더기라도 있는 것인가? 그들은 터무니없는 협상자리를 마련해서 줄을 맬 꼬투리를 찾겠다는 야쿠자 수법을 쓴 것이다. 우리 외교통상부 차관은 6월 독일에서 열릴 국제수로기구(IHO) 회의에 한국식 해저지명을 상정하지 말아달라는 일본 측의 야쿠자식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야쿠자의 수법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한국의 외교는 일본 야쿠자의 수법에 졌다. 일본은 다음 협상의 계기를 얻었고, 국제 사회에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우리 섬 독도에 대응하는 외교가 ‘김종필·오히라 협상’ 때부터 그런 식이었다. 우리는 이 경우 외교당국자들이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상식을 갖추기를 바란다.

1. 우리가 차지하고 관리하는 유인도인 섬을 일본이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만일 일본이 자기네 섬인데 우리에게 양보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원자폭탄을 맞고 그때 정신을 잃어서 못 챙기다가 60년이 지나고 보니까 생각났다는 것인가? 일본의 위상이나 생리가 우리나라에게 영토를 빼앗기고도 말도 못하는 그런 나라인가?

2. 일본 시마네현의 조례가 그들의 야쿠자식 쇼인데 대응할 무슨 가치가 있다고 ‘독도는 우리 땅!’ 하면서 별짓을 다할 필요가 있는가? 이 점에는 무대응이 최상의 일이다. 그들이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데 왜 우리가 대응을 해야 하는가?

3. 한국 정부가 EEZ를 이제 독도와 일본 오키섬을 경계로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왜 눈치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가?

일본은 36년 간 우리나라를 수탈한 나라이다. 그들은 그들의 침략으로 우리 민족이 받았던 고통과 수탈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느라 교과서까지 고친 파렴치한들이다. 세계인들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사무라이 정신이 있다고 알고 있다. 사무라이 정신이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기 배를 가르는 정신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사무라이 정신을 버리고 야쿠자 정신을 취한 추한 ‘니혼진’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사무라이의 탈을 쓰고 야쿠자 짓을 한 자들이다. “원인이 정당하다면 원인을 대적한 모든 선전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된다”는 격언을 우리 외교팀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 땅을 가지고 왜 그들의 눈치를 보는가? 더 떳떳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이 야쿠자임을 알고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