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의 교육

  조회수 : 1026    / 등록일 : 2008-02-14   / 출처(저자) : 크리스천 인용 백과사전


고대 그리스 시대 아테네의 천적이자 맞수였던 스파르타는 기원전 8~7세기가 최고 번영기였다. 당시의 스파르타는 찬란한 고대 문명을 누리고 있었으며, 음악과 춤 등 예능 교육이 발달해서 거의 모든 시민들이 한 가지씩의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
특히 체육 교육이 잘 되어있어서 고대 올림픽 금메달의 반 이상은 스파르타에서 따낼 정도였다.
물론 `시민병사`가 되기 위한 군사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550년경 군사 귀족들이 집권하면서 예능과 운동은 뒷전으로 밀려나가고 국가적으로 군사 훈련만을 강화하게 된다. 바야흐로 스파르타 교육의 특징이
본격화된다.
여자들은 튼튼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에만 전념해야 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일곱
살에서 스무 살까지 국가의 관할 아래 의무 교육을 받았는데, 교육의 내용은 오로지
군사 교육뿐이었다.
남자 어린이들은 일찍부터 집단생활을 하는 가운데 군사 훈련을 받았고, 매질과
굶주림 속에서 독기를 키워 나가는 연습을 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강인하면서도 호전적이 되었으며, 도덕이나 윤리 따위는 전혀 중요치 않게 생각했다.
스파르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 하나의 가치 규범은 오로지 국가의 이익이었다.
덕분에 스파르타는 30년에 걸친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숙적인 아테네를 물리치고
최강의 도시 국가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성공은 오래 가지 못하고 곧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묘한 일은 승리했다고 해서 이전의 교육 방식을 늦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했음에도 스파르타는 몰락했다는 점이다.
결국 군사 문화란 단기적인 전쟁의 승리라는 결과를 위해서는 적절한지 몰라도, 승리 이후의 체제 유지와 체제 강화에는 오히려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스파르타는 로마 시대부터 찬란했던 옛날의 명성을 잃고 변방의 이름
없는 도시로 전락했으며, 오늘날까지도 한때 아테네에 비견될 만한 도시 국가였다는
인식만 남아 있다.

[유식의 즐거움2]